2025.12.21 대강절 네번째 주일 l "피난처 예수" 여호수아 20:1~6ㅣ설교:장귀삼 담임목사
피난처 예수님
여호수아 20:1-6
1.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3.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4.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 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5.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6.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바이블 게이트웨이가 조사한 전 세계 기독교인이 가장 좋아한 말씀은 시편23편 4절 말씀입니다.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날 큰 도움이시요 피난처가 되십니다. 두 번째로 가장 많이 찾은 말씀은 빌립보서 4:6-7절입니다.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경험한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는 황량한 곳이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경험합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보호를 받았습니다. ‘미드바르’인 ‘광야’는 말씀하다라는 ‘따바르’에서 나왔습니다. 광야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라”고 고백합니다.
찰스 스윈돌이 쓴 지혜에 나오는 글입니다. “당신의 광야는 누구의 도움도 없고, 눈에 보이는 희망도 없이, 힘든 가족을 돌보는 것일 수 있다. 당신의 메마른 땅은 병든 육체나 상한 마음일 수 있다. 또는 배우자나 자녀들로 인한 아픔일 수도 있다. 만일 당신이 그런 상황이라면 하나님이 상황을 알고 계실까? 하나님이 나의 아픔을 이해하고 계실까?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가장 잘 알고 계신다. 바로 하나님이 당신을 광야에 두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광야 속에서 선포된다. 우리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목하게 된다.” 스윈돌의 말대로 성읍보다 광야가 하나님의 지혜를 깊이 배우는 장소입니다. 전도서 7:9-10 9.지혜가 지혜자를 성읍 가운데에 있는 열 명의 권력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게 하느니라 10.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엔게디 광야에 숨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추격을 피해서 숨어다니면서도, 더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후로 엔게디 광야는 선지자들의 피난처가 됩니다. 예수님도 엔게디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신 후에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40년 동안 광야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 40년 동안 피난처가 되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피난처를 준비하셨습니다.
신명기 8:2-10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5.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7.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를 네게 주셨음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기업은 ‘스스로 일궈낸 사업’이라는 생각이 강하지만 이스라엘에게 기업은 ‘하나님께 받는 선물’을 뜻합니다. 그래서 땅을 받을 때 하나님 앞에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을 은혜의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의 기업은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땅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레위인들을 장자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유월절 어린 양의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셨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피가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가정의 장자들만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받은 장자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은 하나님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대신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48성읍을 분배 받았습니다. 그 가운데 요단 동편과 서편에 6개의 성읍을 세워서 도피성으로 삼았습니다.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는 죄의 값으로 죽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는 도피성으로 가면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 그래서 도피성은 사람들이 신속하게 갈 수 있는 장소에 있었습니다. 도피성에 도착하면 성문 앞서 장로들에게 진실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나중에 거짓이 밝혀지면 즉시 쫓겨났습니다. 도피성에 들어간 사람은 대제사장이 죽어야만 고향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위해서 죽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 도피성에서 나오면 원수의 손에 죽게 됩니다. 첫째 도피성에 들어간 사람들은 그들의 숨은 의도까지도 심판을 받습니다. 둘째, 일단 도피성 안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이 세우신 은혜로만 살아야 합니다. 여호수아 20:6 6.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도피성은 이스라엘 백성들 뿐 아니라 이방인과 거류민들까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불필요한 살인을 막기 위해서 도피성을 세우셨습니다. 도피성은 첫째, 누구나 찾아갈 수 있는 장소에 있었습니다. 둘째, 도피성은 오직 은혜로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셋째, 도피성에 들어간 사람은 누구나 보호를 받았습니다. 넷째, 도피성은 레위인들과 함께 예배하는 장소였습니다. 다섯째, 대제사장과 운명을 같이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도피성의 진짜 목적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피난처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살인한 자들만 피난처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5:21-22 21.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또한 누구나 인생을 살다보면 막다른 길을 만나게 됩니다. 질병과 고통이라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나고, 사업의 실패와 가정의 위기라는 염려와 근심을 만나기도 합니다. 죄인지 모르고 죄를 짓는 사람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도피성으로 들어간 사람만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 모두는 피난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심으로 모든 사람들을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피난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회가 하나님의 도피성입니다. 이 은혜를 제일 크게 누린 사람이 삭개오입니다. 여리고성의 삭개오는 모든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삭개오도 독하게 사람들을 미워했습니다. 여리고성 모든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 삭개오를 여러 번 죽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삭개오는 여리고 성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만나주시고 그의 집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삭개오는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19:8)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19:9) 삭개오는 피난처 되시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최근 미국에는 “피난처 도시”로 불리는 곳들이 있습니다. “뉴욕, 센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애틀란타, 보스턴, 샌디에이고, 필라델피아, 시애틀” 등입니다. 미국의 반이민정책에 맞서서 갈 곳이 없는 이민자들을 돌보는 도시들입니다. 특히 교회와 학교가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피난처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번 겨울에 우리 교회도 피난처되신 예수님과 함께 합니다. 먼저 오늘 오후에 권병호 집사님과 함께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공연을 주님께 선물 받았습니다. 이번 24일과 25일에는 성탄절과 창립 50주년 감사예배를 동시에 드립니다. 그리고 내년 1월 8일부터 2월 10일까지 초등학생들을 위한 홀리몰리 창민 겨울캠프를 진행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창민교회가 이웃들에게 참된 피난처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에게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득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